하나님의교회의 정통성
하나님의교회 역사는 기독교회사와 맥락을 같이한다.
기독교회사가 곧 하나님의교회 역사임을 2000년 전 예수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마가복음 1:1~10)
기독교의 시작점은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고부터다. 당시 이스라엘은 유대교를 믿었다. 유대교는 그들 고유의 신앙으로 뿌리가 깊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구원자라고 믿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기독교는 신흥종교였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이단으로 치부하며 배척했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았다. 유대인들의 섣부른 판단으로는 예수님만 없으면 그리스도교는 자연히 몰락할 것이라고 믿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사형을 하루 앞둔 날 마가의 다락방으로 열두 제자를 부르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새 언약의 법을 세워주셨다. 이날이 바로 우리들이 최후의 만찬으로 알고 있는 ‘유월절’이다.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7, 19~20)
유월절 다음 날 예수님께서는 로마와 유대인들의 결탁에 의해 십자가형을 받으셨다. 유대인들은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수장의 죽음으로 무리들은 당연히 흩어질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예수님의 죽음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열정으로 불타게 했고 결국 120명의 사도들은 유럽과 아시아 각지로 흩어졌다.
본격적인 초대교회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실질적인 교회가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초대교회가 건물이라는 형태를 갖춘 것은 AD 100년이 넘어서다. 그전에는 House-church(가정예배) 형태로 명맥을 유지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로마의 박해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수중에 있었다. 로마는 태양신을 섬기던 다신교 국가로, 최고의 권위가 황제였다. 로마 시민은 누구든 국가의 모든 일에 복종해야 했다. 물론 기독교인들 역시 국가에 충성했지만 한 가지, 신앙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로마 황제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눈엣가시였다.
더욱이 로마 제국은 국가 통합의 목적으로 여러 신들과 함께 황제에게도 예배하는 종교가 성행했는데, 이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은 국가에 충성하지 못한 자들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결국 로마의 황제들은 기독교 탄압정책을 펼쳐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다. 초대교회는 대체로 House-church를 유지하며 그들의 믿음을 지켰다. 그렇다고 교회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에 있는 교회로 편지를 보내며 교회 명칭을 언급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고린도전서 1:2)
로마의 탄압을 피해 가정으로 전전하며 예배를 드렸던 초대 기독교, 그 이름이 바로 하나님의교회다. 즉, 기독교의 역사는 바로 하나님의교회의 역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기독교는 로마의 눈을 피해 믿음을 지켰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 대한 로마의 탄압은 갈수록 거세졌다.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 황제(재위 기간 54~68년)는 무고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학살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해가 지면 등불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재위 기간 284~305년) 황제 때에는 칙령을 반포해 기독교인들의 예배소를 헐고, 성경을 불태우며 기독교인들을 옥에 가두었다. 이 시기 기독교인들은 채찍질을 당한 뒤 피에 굶주린 맹수의 밥으로 던져지거나 화형을 당하고, 사지가 찢기는 등 끔찍하고 야만적으로 죽임을 당했다. 시신은 방치되었다가 불에 태워지거나 강에 던져졌다. 이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로마 제국은 정부의 위력으로 기독교를 박멸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 카타콤(지하무덤)에까지 숨어 들어가 예배를 드리며 믿음을 지켰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의 탄압을 피해 예배드렸던 장소, 카타콤.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로마가 내놓은 종교정책은 ‘종교의 자유’였다. 로마는 종교적 관용책을 펼치며 타 종교에 대해 묵인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단지 로마의 정치성향일 뿐이었다. 통치 차원에서 로마는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을 베풀었으나 언제든지 필요하면 특정 신앙을 박해하거나 탄압할 수 있었다. 그 대상이 바로 기독교였다.
갈수록 거세지는 탄압 가운데서도 기독교는 로마제국 전체로 전파됐다. 처음에는 평민이나 노예 중심으로 퍼져나갔으나 점차 상류층에서도 하나 둘 기독교를 믿는 무리가 생겨났다. 상류층의 입교는 기독교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이 무렵부터 신도들이 모이는 곳에는 교회가 세워졌다. 3세기 말 무렵에는 전체 로마 인구 중 10%가 기독교인이었다. 놀라운 발전이었다. 박해를 견딘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더없는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이와 함께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하던 갈레리우스는 311년 임종 직전 기독교를 인정하는 칙령에 서명했다. 기독교의 승리였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은 다음 해에 찾아왔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에서 내린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했다. "모든 기독교도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 이 짧은 문장은 기독교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비로소 기독교는 347년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이르러 국교로 인정받았다. 탄압의 세월을 보내고 찾아온 눈물 겨운 결실이라 볼 수 있지만 사실 이 역사는 기독교의 타락을 가져왔다. 다시 말해 기독교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교리가 이교도화돼버린 것이다.
이 무렵 하나님의교회 즉 기독교는 서서히 파벌이 생겼다. 성경대로 행해야 한다는 동아시아 교회와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묵인해도 된다는 로마교회였다. 결국 로마교회는 인본주의라는 독단적인 길을 가게 됐다. 반면 동아시아 교회들은 성경을 위주로 하는 신본주의 사상을 고수했다. 두 지역 교회의 교리 논쟁은 AD 155년 유월절 논쟁으로 촉발됐다. 로마교회 지도자인 아니케터스와 동아시아에 있던 서머나교회 감독인 폴리카르푸스(폴리갑)가 서로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각자 유월절을 지키기로 했다.
당시 로마교회는 성경대로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성력 1월 14일 저녁에 행하던 성찬식을 부활절에 같이 실행했다. 이런 로마교회의 새로운 관습은 성경대로 행하던 다른 지역 교회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이후 197년 로마교회 감독이었던 빅터가 ‘도미닉의 규칙’이라는 법을 만들어 모든 기독교에 유월절 성찬식을 부활절에 하도록 강요했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들은 빅터의 결정에 따랐지만 동아시아 교회들은 모두 거부했다. 동아시아 교회 중 에베소교회의 감독 폴리크라테스는 빅터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사도 빌립, 사도 요한을 비롯한 여러 순교자들이 1월 14일을 유월절로 지켰으며 8대 감독인 자신도 전임 감독의 가르침대로 유월절을 지킨다고 강조했다.
결국 유월절은 AD 325년에 폐지됐다. 두 교리 간의 역법(曆法) 차이로 발생했다고는 하지만 이 또한 교리의 이교도화가 가져온 산물이었다. 이 기간에 급격하게 로마교회의 교리는 변질됐다. AD 321년 일요일 휴업령으로 성경의 안식일을 버렸고, AD 354년 크리스마스를 유입시켰으며, AD 586년 십자가상을 도입했다.
교리의 변화와 함께 논쟁이 거세질 즈음 군사적 약화와 내부적 혼란을 겪고 있던 서로마 제국으로 게르만계의 여러 부족이 대규모로 이동했다. 4세기 말 훈족의 서진(西進)에 자극을 받은 게르만민족은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전후하여 제국 각지에 정착하면서 여러 부족왕국을 건설했다. 이 시기 비록 서로마제국은 멸망했으나 로마교회는 건재했다.
콘스탄티누스가 비잔틴으로 수도를 옮긴 뒤 서로마가 멸망하기까지인 약 100년 동안 로마교회는 나름대로 살 방법을 모색했다. 게르만민족의 대이동 후 여러 미개한 부족들은 왕국의 번영을 위해 로마교회와 손을 잡았다. 그중 재빨리 로마교회로 개종한 프랑크왕국은 처음부터 로마교회를 옹호하므로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로마교회에 정면으로 반대하던 나라 중 세 나라(헤룰리, 반달, 동고트)는 로마감독의 농간에 차례차례 멸망당하고 말았다.
성경적 진리를 버리고 이교도의 길을 걷고 있던 로마교회는 다른 게르만민족들을 포교할 목적으로 우상을 세우고, 교회를 웅장하게 꾸미기 시작하며, 타 민족의 풍습을 더욱 과감히 받아들였다. 각 지역의 문화적 특색처럼 등장하는 교회지붕, 스테인드글라스, 촛불, 성상숭배 등을 들 수 있다.
로마교회의 위상은 이때부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급기야 506년에는 동로마 황제까지 정책적으로 로마교회를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로마교회의 감독을 교회의 우두머리라는 칙령을 반포하는 한편 591년 ‘교황’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천주교황의 탄생이었다. 기독교의 세속화는 결국 종교적 괴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대는 로마카톨릭이 지배하는 종교 암흑시대로 치달았다.
AD 538년 교황은 적대 세력이었던 아리우스파의 동고트를 정복함으로써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게 됐다. 그 종착점은 1798년 프랑스 혁명군이 교황 피우스 6세를 발렌스 성으로 유배시킨 때까지다. 이제 참다운 기독교인 하나님의교회는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초대교회 사도들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도 사라진 후 교회는 교황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로마카톨릭의 부패는 갈수록 심각해졌다. 교황직의 매매와 세속적 권력, 축첩, 간음, 사치, 정적 살해 등의 비리는 특정한 때, 특정 교황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었다. 교황과 성직자들의 음란한 생활은 속담과 풍자로 민중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급기야 교황 레오 3세 때는 죄에 대한 벌을 사면해준다는 조건으로 금전이나 재물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면죄부’가 그것이다. 800년경에 판매가 시작된 면죄부는 15세기에 발행량이 급격히 늘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이처럼 천주교가 부패의 일로를 걷고 있을 무렵, 독일의 광산 노동자에게 한 아들이 태어났다. 신학 교수를 거쳐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프로테스탄트의 사상을 만든 사람, 바로 마르틴 루터다.
루터는 어느 날 수도사인 존 티첼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동전이 그릇에 떨어져 땡그랑 소리를 내는 순간 영혼은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루터는 티첼의 면죄부 판매에 분개했다.
로마교회의 타락을 보며 실망했던 그는 당시 대주교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믿는 자의 전 생애가 회개 과정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라며 반박문을 보내고 교회의 문에 95개조에 달하는 긴 서한을 내걸었다. 비로소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그 후 프랑스의 칼뱅, 스위스의 츠빙글리 등 다양한 종교 개혁가들이 등장했다. 천주교에 뿌리를 두고 있던 이들은 종교개혁과 아울러 천주교에 대항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개신교다. 천주교에서 분리되어 발생했다고는 하지만 교리적 측면에서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대중들은 천주교나 개신교나 하나님을 믿는 곳이라는 인식의 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정통 기독교는 천주교나 개신교가 아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새 언약 유월절을 세워주시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리라’ 하신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교회다. 사도들도 다녔으며 그의 제자들도 죽음을 불사하고 지켰던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 정통성을 고수하며 초대교회 사도들의 믿음을 지키는 그 하나님의교회가 1964년 안상홍님에 의해 복권됐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
인류가 바라는 구원을 주시기 위해 두 번째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그로 말미암아 2000년 전 사라졌던 하나님의교회가 수복된 것이다. 2000년의 세월 속에 수많은 종교가 생겨나고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도 생겨나며 사라지고 있다. 종교의 홍수 속에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정통 기독교를 만나고 싶다면 처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했던 새 언약 유월절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 십자가 운명 이후 AD 325년 폐지되므로 종교인의 마음에서 사라졌던 유월절. 그 유월절 진리를 가지고 있는 정통기독교가 바로 하나님의교회다.
어머니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에 지자체도 감동
하나님의 교회, 창원시장과 경남도의회의장 표창 등 연달아 9개 표창
광범위하면서도 헌신적인 봉사로 지역발전에 기여한 공로 인정
“귀하께서는 평소 투철한 사명감과 봉사정신으로 지역발전과 시민 복리증진에 기여한 공이 크므로 이에 표창합니다.”
지난 12일(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총회장 김주철 목사가 박완수 창원시장 표창을 받았다.
그 동안 꾸준히 헌신적인 자원봉사활동을 전개하며 소외된 이웃을 돕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또한 김주철 목사는 창의적인 노력과 사명감으로 봉사활동을 실천해 경남도민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김오영 경남도의회의장 표창도 받았다.
이외에도 창원의창교회에서 사역을 맡고 있는 김진모 목사가 박완수 창원시장 표창을 받는 등 하나님의 교회 가 창원시청, 창원시의회, 경남도의회, 경남혈액원에서 연이어 표창을 받아 이목을 집중 시키고 있다. 2월 들어 창원을 포함해 경남 지역에서만 여러 지자체로부터 9개의 표창을 받았다.
하나님의교회 경남남부연합회 대표 김진모 목사는 “작은 돌 하나하나가 쌓여 튼튼한 돌담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개인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하지만 성도들이 다함께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다 보니 사랑의 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면서 “앞으로도 모든 인류가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기후변화와 경기 침체 등으로 힘들어하는 이웃과 지역사회를 돕는 봉사에 앞장설 것”이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실제로 하나님의 교회는 지난 수십 년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광범위하면서도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전개해왔다. 사회, 문화, 체육, 환경, 복지 등 이들의 활동은 다방면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들은 해마다 전 세계 유월절맞이 지구환경정화운동을 전개해 신이천, 태화강, 남강, 진해루 등 지역의 강과 하천, 바다를 정화하는 데 힘써왔다. 더불어 경남 지역에 소재한 약 30개의 교회에서 매달 정기적인 거리정화활동을 실시하며 도심 거리와 공원정화에도 힘을 기울여왔다. 이러한 활동은 쾌적한 지역 환경 조성뿐 아니라 시민들의 환경보호 의식을 고취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이들은 해마다 대규모 단체 헌혈을 실시해 혈액부족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데도 앞장서왔다. 2012년에는 교회의 큰 절기인 유월절을 앞두고 울산과 창원, 김해에서 1,300여 명의 성도들이 헌혈에 나서 그 가운데 약 500명의 혈액을 제공한 바 있다.
이외에도 농번기마다 인근 농가를 찾아 일손돕기에 나서는가 하면 명절과 연말연시에는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연탄과 쌀 등 생필품과 난방용품 지원하고, 제설작업과 태풍피해복구활동,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위안잔치 등도 꾸준하게 실천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활동들을 대부분 가족 단위로 실시하거나 이웃도 동참하게 하여 가정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고 이웃 간 소통과 지역민 화합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학생들과 교사, 교육 관계자들을 위한 무료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열어 학업 스트레스와 학교 폭력에 시달려온 학생들을 위로하는 한편 음악을 통한 소통에도 힘쓰고 있다.
앞서 1월 23일 울산북구교회에서 열린 하나님의교회 메시아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관람한 바 있는 정정태 울산광역시교육청 장학관은 “오케스트라도 좋은 음악적 감성을 길러주었지만 영상을 보고 이 교회 신자들의 미래지향적인 봉사활동에 매우 놀랐다. 모두가 이렇게만 한다면 학교 폭력이나 복지 때문에 문제시될 것이 어디 있겠는가? 서로 돕는 정신을 정말 좋게 보았다”고 칭찬한 바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그대로 안식일, 유월절을 비롯한 3차 7개 절기, 수건 규례 등 새 언약의 진리를 온전히 지키는 교회다. 현재 국내뿐 아니라 150개국에 전파된 세계적인 교회로, 국내외에 2,200개의 교회가 있다.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 유일한 교회이기도 하다. 이들은 일부 지역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 구석구석에서 진정성 있는 봉사활동을 펼치며 어머니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 이처럼 수십 년 동안 꾸준하게 실천해온 헌신적인 봉사활동에 유엔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찬사를 보내고 있으며, 경남 지역뿐 아니라 전국 곳곳의 지자체에서도 연달아 표창을 수여하고 있다.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교회, 이웃의 관심 한몸에 경남 사천시 중심가에 예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인 외관의 ‘사천 하나님의 교회’ 설립 13일 700여 명의 목회자와 성도 참여한 가운데 헌당기념예배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 목사)가 경남 사천시 사천읍에 300평 규모의 단독 성전을 마련하고, 13일(수) 헌당기념예배를 가졌다.
삼천포와 사천군이 통합된 사천시는 조선소를 비롯해 비행장과 비행기 공장, 외국 기업들이 자리해 젊은 층과 비교적 생활형편이 넉넉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특히 새 성전이 자리한 사천읍은 인근에 공항과 버스터미널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중심가다. 또한 사천여자고등학교와 수양초등학교 등 교육시설이 많아 환경이 쾌적하고 깨끗하며 조용하다.
‘사천 하나님의 교회’는 대지면적 993m², 연면적 1,075m²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읍 단위 지역에서는 큰 규모다. 420석 규모에 복층으로 이뤄진 대예배실을 비롯해 소예배실, 접견실, 교육실, 다목적 홀과 부속건물의 식당 등으로 이뤄져 있다.
붉은 벽돌에 화이트 색상을 가미한 외관은 예스러운 멋과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웅장함을 느끼게 하는 디자인 요소가 가미돼 주변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특히 성전 문을 나서면 교회 마당이 도로와 바로 연결되어 지나는 이웃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열린 구조로 되어 있어 가까운 이웃처럼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다.
‘사천 하나님의 교회’ 단독 성전 설립은 동 교회뿐 아니라 주변 이웃들에게도 많은 관심과 화젯거리다. 교회가 세워진 장소가 사천시 중심가인데다 짧은 시간 큰 규모의 단독 성전을 세울 만큼 복음에 좋은 성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사천교회에서 사역을 담당하는 정광섭 당회장은 “복음의 핵심 키는 어머니 하나님께 있다. 어머니의 말씀이 곧 생명수이기에 성도 모두가 어머니께서 주신 한 말씀도 흘리지 않고 가슴에 담아 영혼을 구원하고 이웃에 사랑을 베풀고자 노력한 결과”라며 “앞으로도 어머니의 교훈대로 행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일 기념예배에는 지역의 목회자와 성도 700여 명이 참여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새 성전 헌당을 축하하기 위해 발걸음한 성도들로 대예배실은 물론 소예배실과 다목적 홀까지 가득 찼다.
총회장 김주철 목사는 기념예배 설교를 통해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고 영접한 사람에게 천국 열쇠를 허락하시며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과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며 “성령시대 구원자로 오신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교회 성도로서 영적 자부심과 긍지를 갖자”고 권고했다.
또한 “생명수를 찾아 아버지와 어머니께 나아오는 역사가 놀랍게 일어나도록 진리의 빛을 발하여 흑암한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고 소금의 역할을 하는 교회”가 되기를 당부했다.
외국 기업에 근무한다는 천덕용(41, 사남면) 씨는 “자유롭고 편리하고 뿌듯하고 자신감이 생긴다”고 새 성전 설립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또한 “70억 인구 중에 내가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 속해 있다는 것이 정말 기쁘다”면서 “예루살렘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사람이 막을 수 없는 강이 된다고 하신 에스겔 47장의 예언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현실로 이뤄지는 것을 보면서 더 큰 믿음과 확신이 생긴다”고 말했다.
신앙을 갖고 난 이후 마음이 행복해졌다는 이근정(38, 사천읍) 씨는 “교회가 커지니 주변 사람들의 시각도 많이 달라져 어머니의 영광이 더 많이 드러나게 된 것 같다”면서 “아직 전하지 못한 이웃들에게 어머니의 사랑과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데 더욱 열심 낼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해를 거듭할수록 분가와 확장, 단독 성전 설립을 계속하며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사천교회 헌당기념예배 하루 전인 12일에도 대구 동구 지역에 새로 설립한 단독 성전, ‘대구반야월교회’와 경산시 중심가에 새로 마련한 ‘경산교회’에서 헌당기념예배를 가진 바 있다.
교회 측은 “전쟁과 질병, 경제적 어려움과 각종 재난과 재앙으로 어려움을 겪는 세계인들이 진정한 행복과 평안, 구원을 얻고자 어머니 하나님께 나아오면서 국내외에서 성전을 넓혀달라는 요청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앞으로 새 성전 설립을 알리는 헌당기념예배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미 알려진 대로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다. 성경의 가르침을 근간으로 안식일, 유월절을 비롯한 3차 7개 절기, 수건 규례와 침례 등 새 언약의 규례들을 온전하게 지키고 전한다. 또한 이웃을 사랑하라는 엘로힘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이웃을 돕고 사회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사천시에서도 그 동안 사천시장 인근을 비롯해 평화리, 수성리, 사주리 등에서 꾸준히 환경정화활동 전개해왔다. 지난해 9월, 태풍 삼바가 몰아닥쳤을 당시에는 피해를 입은 인근의 굴 양식장을 찾아 굴 덕장을 세우는 일을 도와 어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도 했다.
# 사진설명
사진1.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 목사)가 경남 사천시 사천읍에 새로 설립한 ‘사천 하나님의 교회 전경’. 지하 1층 지상 3층의 성전 건물과 식당 등 부속 건물로 이뤄진 새 성전은 예스러우면서도 현대적 감각이 가미된 외관이 주변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사진2.
-하나님의 교회가 경남 사천시 사천읍 중심가에 단독 성전, ‘사천교회’를 설립하고 13일(수) 헌당기념예배를 가졌다. 기념예배에 참석한 700여 명의 성도들은 사천 지역의 더 많은 영혼들에게 어머니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가 전해지기를 소망했다.
출처:영남매일
부활절은 언제인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교회는 모두 부활절을 지킨다. 기성교회는 해마다 ‘춘분 후에 오는 만월(보름) 후 첫 일요일’이 되면 이날을 기념해 색색의 삶은 계란을 나눈다.
그런데 이는 성경과 다르다. 사도들은 삶은 계란을 먹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들과 다른 날짜에 부활절을 지켰다. 성경상의 부활절은 ‘무교절 후에 오는 안식일 다음 날’, 즉 무교절 후에 오는 첫 일요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교절을 모르고서는 부활절의 정확한 날짜도 알 수 없다.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그 첫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레위기 23:4~14)
무교절은 성력(유대력) 1월 15일로 유월절 다음 날이다. 하나님의 7개 절기 중 유월절, 무교절, 부활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이 말씀에서 주목해야 할 건 ‘첫 이삭’이다. 첫 이삭은 ‘초실’, 말 그대로 ‘첫 열매’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 부활절이 언제인지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잡히신 건 성력 1월 14일 유월절 밤이었다.
내(바울)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고린도전서 11:23~25)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 너희가 이것을 다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누가복음 22:15, 마태복음 26:26~28)
유월절 밤 예수님께서는 이 유언을 남기신 후 잡혀가셨고, 다음 날 무교절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그리고 정확하게 무교절 후에 온 첫 일요일에 부활하셨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린도전서 15:20)” 하신 말씀대로 초실절의 예언을 성취하신 것이다. 성경에서 부활절은 무교절 후 오는 첫 일요일인 것이다. 그런데 왜 난데없이 부활절을 ‘춘분 후에 오는 만월 후 첫 일요일’에 지키게 된 것일까.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지 약 300년 후의 일이다. 325년,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니케아(지금의 터키 이즈니크)에서 종교회의를 소집했다. 의제 중의 하나는 ‘부활절 날짜 정하기’였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동방교회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 간의 이른바 ‘부활절 논쟁’이라는, 오랜 갈등을 종식시키자는 명분에서였다. 성경에 엄연히 부활절 날짜가 명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모여 날짜를 고쳐버렸다. 유월절은 아예 없어졌다.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그토록 간절히 원하시며 죄 사함과 영생을 약속하신 절기다. 무교절은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을 기리는 절기며,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다. 예수님의 숭고하신 뜻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을 헛수고로 만들고 만다. 강조하건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은 ‘무교절 후에 온 첫 일요일’이다.
사람이 한번 태어나 죽는것은 정해진 이치 입니다. 죽음이 끝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이땅에서 죄사함을 받지 못하면 결국 지옥으로 갈수 밖에 없는게 가련한 인생의 결과 입니다.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월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유월절 지키고 천국을 소망해요.
흔히 상대방의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우스갯소리로 ‘사오정’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영적 사오정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사 42:18~20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마 13:14~17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아도 도무지 이를 깨닫고 바른 길로 행치 않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이런 영적 소경과 귀머거리의 말로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미리 경고하셨다.
마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불법을 행하는 영적 소경과 귀머거리는 결국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그들이 듣고 보았지만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요 6:53~5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 하나니
마 26:19~28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포도주)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자녀들이 먹고 마심으로 영생 얻기를 원하셨다.
천국은 영생이 있는 자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도 ‘하나님을 사랑한다’, ‘성경을 믿는다’고 입술로만 외치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