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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5일 일요일

5분을 가장 가치있게 보내기 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내게 남은 시간 5분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지하생활자의 수기 등 수많은 불후의 명작을 남긴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와 함께 ‘러시아의 3대 문호’로 불리는 그는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한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한 사형수이기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상주의적 사회주의 모임에 가담해 활동하던 중 1849년, 이른바 ‘페트라세프스키 사건’에 연루돼 체포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그에게 반역죄를 적용해 사형판결을 내렸다. 그해 12월 22일 사형이 집행되던 날, 형장에 도착한 그에게 마지막으로 5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28세의 젊은 나이였던 그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5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제 이 세상에서 숨 쉴 수 있는 시간은 5분뿐이다. 그중 2분은 동지들과 작별하는 데, 2분은 삶을 돌아보는 데, 나머지 1분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한번 보는 데 쓰고 싶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사형집행 중지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풀려난 그는, 사형집행 직전에 주어졌던 5분을 생각하며 평생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하루, 매 순간을 마지막 순간처럼 열심히 살면서 주옥같은 명작을 쓸 수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죽음 앞에 짧은 5분이라는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 하겠다. 지금 내게 남은 시간이 단 5분뿐이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생각만하다 허무하게 흘려 보낼지도 모른다. 성경은 우리 인생이 영원하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교회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10)


영원의 시간 속에 순간과 같고 찰나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짧은 시간을 살다가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마치 영원을 살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후회 없이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회 없이 살았다고 고백하기를 원하지만, 과연 어떠한 삶이 후회가 없는 삶인지에 대해서는 그 답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성경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삶의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24)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 4:6~8)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후회 없다고 자부한 사도 바울.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복음의 사명을 증거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생각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후로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바라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자신의 생명과도 바꿀 만큼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 바로 복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받은 복음 전하는 사명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일꾼임을 자랑스러워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골로새서 1:23)


사도 바울은 그와 동시에 자신이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강조하면서 복음이 곧 새 언약임을 증거했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고린도후서 3:6)


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사명으로 주신 새 언약은 무엇인가.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이 이른지라 … 때가 이르시되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7~20)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4)


사도 바울이 후회 없이 살았다고 자부하며 전했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키신 ‘새 언약 유월절’이다. 새 언약 유월절이야말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의 죄를 사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귀하고 복된 소식인 것이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죄를 사해주시고 당신의 살과 피로써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그리스도를 위해 전 생애를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마치 사형집행 직전 간신히 목숨을 건졌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매 순간을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아직 죽음의 사슬에 매여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새 언약 유월절의 기쁜 소식을 속히 받아들여 죄 사함과 영생의 축복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던 것처럼 죄 사함과 영생을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열심히 새 언약 유월절을 전하여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는 복음의 일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1. ‘사형제 폐지를 둘러싼 논란’, 독서신문, 2010. 4. 19.
http://www.reader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11
 2. ‘도스토예프스키’, 예스24 작가 소개
http://www.yes24.com/24/AuthorFile/Author/113762
3. ‘에피소드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다이제스트’, 프리윌






가치있는 5분 하나님의교회

이세상을 가장 가치 있게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새언약을 지키며 새언약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다한다면
그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수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의교회는 이땅에 사람으로 오신 아버지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을
영접하여 믿고 새언약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매주 토요일에 새언약안식일을 지키고 있으며,
하나님의교회는 매년 새언약유월절을 비롯한 3차7개절기를 지킵니다.
 
하나님의교회 가치있는 5분

2013년 2월 20일 수요일

¶안상홍님¶ 되찾은 ⊙새언약 안식일, 새언약 유월절⊙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안식일과 유월절 등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십자가 사건 후 사도들의 행적에도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성경에는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안식일을 규례로 지키고, 새언약 유월절을 지킨 장면이 기록되어있다. (행 17장 2~3절, 행 18장 4절, 고전 5장 7~8절, 고전 11장 23~25절)

2,000년 전에 사도들의 행적을 보면 십자가 사건 이후에도 안식일과 유월절은 지켜졌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사건 이후 안식일과 유월절은 폐지되었기 때문에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는 주장은 성경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주장이다.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교회들이 대부분인 세상에서 안식일과 유월절이 진리임을 가르쳐주신 안상홍님께서 두번째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들도 아직까지 십자가 사건 이후에 안식일과 유월절은 폐지되어 지킬 필요가 없는 것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상홍님께서는 무너진 진리의 제단을 복구해주시고 일요일 예배가 안식일인줄 알고 지키던 무지한 인생들에게 일곱째날 안식일은 토요일이라고 알려주시고 유월절을 지켜야 영생을 얻어서 천국을 갈 수 있음을 알려 주셨다.



안상홍님께서 친히 오셔서 알려주신 안식일과 유월절을 경홀히 여길 것이 아니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지키는 자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를 알려주시고 깨닫게 해주신 안상홍님께 감사드리며 귀한 내 형제와 자매를 찾아서 안식일과 유월절 진리를 알려주고 싶다.


2013년 1월 27일 일요일

머리수건-하나님의 교회


[ 머리수건 ]




사도 바울의 당부


고린도전서는 사도 중의 사도라 일컫는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다. 이 편지에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도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린도전서 1:1~3)


55년경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인사말을 시작으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에게 긴 편지를 보냈다. 바울은 생애 동안 3차에 걸쳐 전도여행을 한 바 있는데, 이 편지를 쓴 것은 터키 남서쪽 해안에 위치한 에베소에서 3차 전도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간에 분쟁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로 추정된다(고린도전서 1:11).


고린도는 수년 전 2차 전도여행을 했던 곳이다. 교통수단이 변변치 않았던 당시로서는 아주 멀고도 험한 여정이었을 텐데도 결국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의 정점을 찍은 곳은 고린도였다.


당시 고린도는 그리스(헬라)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상업과 무역이 발달한 국제적 중심지였다. 반면 부도덕한 도시로도 유명했다. 이 도시에는 사랑의 여신이라 불리는 아프로디테를 숭배하는 거대한 사원이 있었는데, 이 사원에서 천 명가량의 여사제들이 매음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또,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도시 인구는 다양한 민족들이 섞여 있었다. 따라서 다양한 이방신 숭배사상이 유입되었고, 사람들의 삶은 배금주의와 향락주의에 젖어 있었다.


고린도 하나님의교회의 구성원 역시 이방인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신앙적으로,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일부 성도들로 인해 혼란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바울로서는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퇴폐한 사회풍조와 헬라철학의 잡설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퍽 염려스러웠을 것이다. 그의 편지에는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1장부터 10장까지 읽어보면,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며, 음행의 죄를 꾸짖고, 결혼에 대한 교훈과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를 함으로써 거룩한 성도로서의 본분을 가르치고 있다. 바울은 그 다음으로 11장에서는 강력하고 절실하게 어떤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고린도전서 11:1~3)

바울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바울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무슨 이야기를 꺼내고자 이렇게 조심스러울까. 선뜻 본론을 언급하지 못하고 고린도교회를 칭찬하며 꺼낸 이야기는 바로 다음 구절에 나타난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고린도전서 11:3~5)


요약하자면 예배나 기도드릴 때 남자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말고,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라는 말이다. 이 규례는 바울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다.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여성도는 머리수건을 쓰는 것, 남성도는 쓰지 않는 것. 어려운 규례가 아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반복적으로 혹은 역설적으로 여성도의 머리수건 규례를 언급하고 있다. 꼭 지켜져야 할 그리스도의 가르침인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아닌 양 치부해버릴까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많은 교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교회에서도 올바로 머리수건 규례를 지키는 곳이 없다. 여성도가 머리수건을 쓰는 천주교도 남자인 사제가 비레타(biretta, 각진 모자), 주케토(zucchetto, 이탈리아어로 ‘작은 바가지’라는 뜻으로 둥근 모자) 등을 쓰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는 어긋난다.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축복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배 시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거나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바울은 역설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고 싶었던 바울의 당부는 오직 한 가지, 거룩함을 덧입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었다.

2012년 9월 19일 수요일

폐지된 모세율법이 아닌 지켜야만될 그리스도율법인 새언약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혹자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율법주의라고 하기도 합니다.

율법은 폐지 되었는데 하나님의 교회는 율법을 지킨다며 이상한 눈초리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율법중에는 폐지되어 지키지 않아도 되는 모세 율법도 있지만 신약시대에 반드시 지켜야만될 그리스도 율법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은 그리스도 율법아래 있는 자라 고백했고

예수님또한 율법을 폐하러 온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완전케 하신 율법이 바로 그리스도 율법인 새언약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새언약의 안식일 새언약의 유월절등 새언약을 지킵니다.

지금 하나님의 교회에서 지켜지고 있는 절기는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치신 새언약의 율법이고 세상 끝날까지 지켜져야 할 계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