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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7일 화요일

하나님의교회를 복구한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패스티브닷컴

누가 숭례문을 복구할까
 


하나님의교회 복구 안상홍님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4가 중심에는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는 커다란 성문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숭례문이다. 동대문이라 불리는 흥인지문, 서대문이라 불리는 돈의문, 북정문이라 불리는 숙정문과 함께 서울의 4대문 중 하나인데, 숭례문은 남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남대문이라고 불린다. 서울에서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숭례문은 국보 제1호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됐다. 조선의 제1대 왕 태조 때 약 3년에 걸쳐 만들었으며 세종, 성종 때 개축과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층 구조인 숭례문은 600년 동안 서울 도성을 지켜오면서 성곽이 철거되거나 연못이 매립되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숭례문을 중심으로 벌어진 총격전, 박격포 공격으로 일부가 훼손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던 2008년 2월 10일 밤,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이 누군가의 방화로 인해 불타고 말았다. 약 다섯 시간에 걸친 화재 진압 끝에 불길은 잡혔지만 2층은 90% 이상이 훼손돼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국민들은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숭례문을 보며 분노와 안타까움에 가슴을 태웠고, 화재 진압 후 잿더미로 변한 숭례문을 보며 깊은 시름에 젖었다.


문화재청은 ‘숭례문 복구단’을 꾸려 불에 타 무너진 숭례문을 복구하기 위한 대대적인 작업에 돌입했다. 문화재청의 지휘 아래 보존과학 전문가, 기와전문가와 제와장, 국내 최고의 기능 보유자이자 중요 무형문화재인 대목장과 단청장 등이 복구작업에 참여했다. 이들은 ‘전통 기술’에 입각한 복구를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마침내 2013년 4월 복구사업이 마쳐졌다. 그리고 5월 완공식을 통해 옛 모습을 되찾은 숭례문이 국민들에게 공개됐다. 그런데 이후 국민들은 더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수백억 원을 들여 복구한 숭례문이 겉만 옛 모습을 갖췄을 뿐, 그 이면에는 날림 공사와 비리로 얼룩져 있었기 때문이다.


복구 작업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이 줄줄이 입건됐다. 대목장은 숭례문 복구에 사용해야 할 금강송을 가로채고, 단청장은 화학 안료와 접착제를 몰래 섞어 쓰며 복구비용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숭례문 복구작업을 진두지휘했던 복구단장은 부실 논란으로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숭례문 복구 과정을 담은 책을 출판해 직위해제됐다.


복구단장은 그 책에 “숭례문 복구의 원칙으로 내세웠던 전통기법 사용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거나 전승 단절에 따른 한계로 충분히 구현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며 “전통기법과 재료가 거의 사라진 상태에서 복구 공사를 시작했다”고 술회한 것으로 전해진다.


숭례문이 훼파되고 복구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숨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진리가 훼파되고 복구되는 과정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의교회 복구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


안타깝게도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워주신 진리는 사도시대 이후 하나씩 하나씩 훼손되기 시작했다. 이후 안식일, 유월절을 비롯한 하나님의 절기들, 머리수건 규례 등은 교회 내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전승은 완전히 단절돼 있었다. 진리가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적그리스도)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다니엘 7:25)


땅이 또한 그 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라 (이사야 24:5)


과연 그 누가 초대교회 시대와 똑같이 진리를 복구해줄 수 있을까. 숭례문을 만들었던 조선시대의 장인들이 나타나 숭례문 복구작업에 참여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필시, 숭례문은 완벽하게 복구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초대교회 시대 진리를 다시 복구해주실 수 있는 분은 진리를 세우신 예수님밖에는 없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 (이사야 51:3)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 그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사야 25:6~9)


훼파된 진리를 복구해주셔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성경의 예언에 따라 이 시대 두 번째 오신 분이 안상홍님이시다.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께서는 2천 년 전 초림 예수님께서 세워주셨던 진리를 완벽하게 복구해주셨다. 안식일, 새 언약의 유월절과 절기들, 머리수건 규례 등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진리를 알려주셨다. 안상홍님께서 하나님이신 이유다.



<참고자료>
1. ‘서울 숭례문’, 두산백과
2. ‘숭례문 방화사건’, 위키백과
3. ‘숭례문, 그 600년의 변화’, 네이버캐스트
4. ‘전통기법 부족, 숭례문 복구과정 책 낸 문화재청 국장 직위해제’, 한국일보, 2014. 2. 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8&aid=0002463981


 
 
 
하나님의교회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은 무너진 진리를 회복해 주시려고 이땅에 두번째 오셨습니다.
하나님의교회를 재건해 주셔서 다시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안상홍님께서 회복해주신 하나님의 절기를 지킵니다.
새언약안식일, 새언약유월절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절기입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성경대로 오신 안상홍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교회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


2015년 2월 15일 일요일

5분을 가장 가치있게 보내기 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내게 남은 시간 5분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지하생활자의 수기 등 수많은 불후의 명작을 남긴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와 함께 ‘러시아의 3대 문호’로 불리는 그는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한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한 사형수이기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상주의적 사회주의 모임에 가담해 활동하던 중 1849년, 이른바 ‘페트라세프스키 사건’에 연루돼 체포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그에게 반역죄를 적용해 사형판결을 내렸다. 그해 12월 22일 사형이 집행되던 날, 형장에 도착한 그에게 마지막으로 5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28세의 젊은 나이였던 그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5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제 이 세상에서 숨 쉴 수 있는 시간은 5분뿐이다. 그중 2분은 동지들과 작별하는 데, 2분은 삶을 돌아보는 데, 나머지 1분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한번 보는 데 쓰고 싶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사형집행 중지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풀려난 그는, 사형집행 직전에 주어졌던 5분을 생각하며 평생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하루하루, 매 순간을 마지막 순간처럼 열심히 살면서 주옥같은 명작을 쓸 수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죽음 앞에 짧은 5분이라는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 하겠다. 지금 내게 남은 시간이 단 5분뿐이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생각만하다 허무하게 흘려 보낼지도 모른다. 성경은 우리 인생이 영원하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교회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10)


영원의 시간 속에 순간과 같고 찰나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짧은 시간을 살다가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마치 영원을 살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후회 없이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회 없이 살았다고 고백하기를 원하지만, 과연 어떠한 삶이 후회가 없는 삶인지에 대해서는 그 답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성경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삶의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24)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 4:6~8)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후회 없다고 자부한 사도 바울.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복음의 사명을 증거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생각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후로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바라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자신의 생명과도 바꿀 만큼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 바로 복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받은 복음 전하는 사명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일꾼임을 자랑스러워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골로새서 1:23)


사도 바울은 그와 동시에 자신이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강조하면서 복음이 곧 새 언약임을 증거했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고린도후서 3:6)


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사명으로 주신 새 언약은 무엇인가.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이 이른지라 … 때가 이르시되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7~20)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4)


사도 바울이 후회 없이 살았다고 자부하며 전했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키신 ‘새 언약 유월절’이다. 새 언약 유월절이야말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의 죄를 사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귀하고 복된 소식인 것이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죄를 사해주시고 당신의 살과 피로써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그리스도를 위해 전 생애를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마치 사형집행 직전 간신히 목숨을 건졌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매 순간을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아직 죽음의 사슬에 매여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새 언약 유월절의 기쁜 소식을 속히 받아들여 죄 사함과 영생의 축복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던 것처럼 죄 사함과 영생을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열심히 새 언약 유월절을 전하여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는 복음의 일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1. ‘사형제 폐지를 둘러싼 논란’, 독서신문, 2010. 4. 19.
http://www.reader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11
 2. ‘도스토예프스키’, 예스24 작가 소개
http://www.yes24.com/24/AuthorFile/Author/113762
3. ‘에피소드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다이제스트’, 프리윌






가치있는 5분 하나님의교회

이세상을 가장 가치 있게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새언약을 지키며 새언약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다한다면
그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수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의교회는 이땅에 사람으로 오신 아버지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을
영접하여 믿고 새언약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매주 토요일에 새언약안식일을 지키고 있으며,
하나님의교회는 매년 새언약유월절을 비롯한 3차7개절기를 지킵니다.
 
하나님의교회 가치있는 5분

2013년 2월 26일 화요일

안식일은 토요일임을 알려주는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안식일이 토요일 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려 주시고 지키게 해 주신분은 하나님의교회를 세우신 하나님 이십니다. 그분은 안상홍님 입니다.

2013년 2월 20일 수요일

¶안상홍님¶ 되찾은 ⊙새언약 안식일, 새언약 유월절⊙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안식일과 유월절 등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십자가 사건 후 사도들의 행적에도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성경에는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안식일을 규례로 지키고, 새언약 유월절을 지킨 장면이 기록되어있다. (행 17장 2~3절, 행 18장 4절, 고전 5장 7~8절, 고전 11장 23~25절)

2,000년 전에 사도들의 행적을 보면 십자가 사건 이후에도 안식일과 유월절은 지켜졌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사건 이후 안식일과 유월절은 폐지되었기 때문에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는 주장은 성경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주장이다.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교회들이 대부분인 세상에서 안식일과 유월절이 진리임을 가르쳐주신 안상홍님께서 두번째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들도 아직까지 십자가 사건 이후에 안식일과 유월절은 폐지되어 지킬 필요가 없는 것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상홍님께서는 무너진 진리의 제단을 복구해주시고 일요일 예배가 안식일인줄 알고 지키던 무지한 인생들에게 일곱째날 안식일은 토요일이라고 알려주시고 유월절을 지켜야 영생을 얻어서 천국을 갈 수 있음을 알려 주셨다.



안상홍님께서 친히 오셔서 알려주신 안식일과 유월절을 경홀히 여길 것이 아니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지키는 자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를 알려주시고 깨닫게 해주신 안상홍님께 감사드리며 귀한 내 형제와 자매를 찾아서 안식일과 유월절 진리를 알려주고 싶다.


2013년 2월 13일 수요일

♬새언약 안식일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하나님의교회♬


갓 태어난 아기는 가장 먼저 울음을 터뜨린다.
울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공기가 폐로 들어가 처음으로 숨을 쉰다.
첫울음은 첫 번째 호흡이다.  동시에 세상과의 첫 소통을 의미한다.
우렁찬 울음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처음으로 호흡한 순간부터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숨을 쉬는 것처럼
사람은 평생 가족, 친구,동료,이웃과 소통하며 살아간다.
타인과의 소통은 정신적 호흡이라 할 수 있다.
편히 호흡하는 것이 건강의 기본 요소이듯, 막힘 없는 소통은 행복한 삶의 밑거름이다.






하나님과 소통할수 있는 새언약 안식일.
안식일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갈수 있다.

출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2013년 2월 11일 월요일

죽은자를 숭배하는 사람들-패스티브닷컴(하나님의교회)

죽은 자를 숭배하는 사람들

 
예수님의 제자였던 야고보에게 관절염이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성경에는 죽은 자들에게 기도하거나 죽은 자들을 통해 기도함으로써 축복을 받는다고 기록한 구절이 단 한 곳도 없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께 간구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로마카톨릭교회는 이미 죽은 특정 인물들에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축복을 준다고 가르친다. 일명 성인 숭배사상이다. 공교롭게도 카톨릭의 이 성인 숭배사상은 옛날 이교도가 품고 있던 사상과 매우 흡사하다.
 
고대 바벨론에는 카톨릭처럼, 다수의 신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기도하는 사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은 약 5,000명의 남신과 여신을 섬기고 있었으며, 이들이 매년 매달 매일 매 시간과 같은, 특정한 때를 주관하고 어느 특정한 일(직업)들을 주관하며 특정한 장소를 주관하거나 특정한 질병을 주관한다고 믿었다. 이 같은 사상은 그대로 로마에 유입됐다.
 
 

다양한 신들이 특정한 직업과 장소, 물건 등을 지배한다는 이 사상은, 로마인들에게 급속히 흡수되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믿는다 하는 로마교회에까지 들어갔다. 당시 로마교회는 이교도인들을 전도하기 위해 그들의 다신교적인 문화까지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는 곧 하나님만을 섬기는 기독교의 기틀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로마교회는 하나님의 절기인 안식일 대신 이교도의 태양신 숭배일인 일요일예배를 지키는 데 앞장섰으며, 새 언약 유월절을 폐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심지어 이교주의에서 개종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믿는 각종 ‘신’들과 결별하는 것을 주저한다는 이유로, 남신과 여신들이 새롭게 명명되어 ‘성인들’로 불려졌다. 그것은 각종 직업을 주관하는 성인을 비롯해 질병을 치료하는 성인 등으로 나뉘었다.
 
로마카톨릭은 이 성인들에게 기도하면 하나님께 다른 방법으로는 받을 수 없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신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성인들을 신격화했다. 이교도의 신들과 관련된 수많은 전설들을 성인들에게 그대로 전이시킨 것이다. 어떤 경우는 이교도에서 숭배되었던 신들의 이름을 성인들의 이름으로 재탄생시켰다.
 
이에 카톨릭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전설이란 그리스도교 이전의 종교 설화에 담긴 사상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전설은 그리스도교인의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인화된 것이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이 전설은 신화와 같은 것에 기원을 두고 있음이 명백하다. ··· 성인들에 관한 많은 전설의 경우도 역시 그렇다. 고대인들이 영웅들에 관하여 가지고 있던 사상들이 그리스도인 순교자로 전이되는 것은 용이하였다.”
 
이처럼 로마카톨릭교회의 성인숭배사상은 이교도의 다신교적인 사상을 계승한 것에 불과하다. 성경에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말씀이 기록돼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며 십계명의 첫째 계명이다. 죽은 사람을 신격화해 그들을 숭배하라는 가르침은 성경에 없다.


성경가르침대로 새언약 안식일,새언약유월절 지키는 하나님의교회에서 올바른 말씀을 접할 수 있습니다.



출처:패스티브닷컴https://www.pasteve.com/

2013년 2월 5일 화요일

하나님의 교회 재림예수님 안상홍님



우리가 기다렸던 하나님, 안상홍님





사람은 누구나 몸 속에 제 부모의 피가 흐른다. 부모의 피를 받아 생명을 얻어낸 것이다. 바로 이런 원리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당신의 피를 이어받도록 섭리하신 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성력 1월 14일 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준비케 하시고 마지막 만찬을 함께했다. 하늘에서 지은 죄를 씻어주시기 위해 죄인들을 대신해 십자가에 희생당하신 전야(前夜), 유언을 남기시는 자리였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누가복음 22:15) 


예수님께서 유언을 남기시며 행하신 건 제자들과 유월절을 함께하며 무언가를 ‘먹는’ 것이었다. 그것은 떡과 포도주였는데,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먹는 떡이 당신의 살이 될 것이고, 유월절에 마시는 포도주가 당신의 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일찍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 하신 말씀에 대한 이행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을 지키면 재앙에서 보호해주고 죄도 없애주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예전에는 어린양을 잡아 대문 앞에 바르면 됐고, 이제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약속을 어겼다. 그뿐 아니라 아예 하나님과의 약속을 없던 걸로 해버렸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해서다. 아무도 하나님의 살과 피를 이어받을 수 없게 돼버렸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유월절은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히 잊혀지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다시 오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 그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사야 25:6~9)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란 오랫동안 포도주를 쓰지 않았다, 즉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의미다. 자그마치 1600년 동안이다. 세상 그 누구도 유월절을 지켜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유월절을 가르쳐주신 분이 안상홍님이시다. 


안타깝게도 1600년이 흐르는 동안 유월절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 ‘지키면 이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유월절을 지켜야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2013년 1월 24일 목요일

하나님의특별한날 안식일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 특별한 날
일, 월, 화, 수, 목, 금, 토.
하나님께서 지키라 하신 안식일은 무슨 요일에 해당할까.
안식일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계명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주간의 끝날인 제칠일을 다른 날과 구별하셨다. 그리고 그날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셨다. 사람들도 일년 365일을 다 특별한 날로 기념하지는 않는다. 그중 아주 특별한 날들만 기억한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날로 정하신 날이 일곱째 날 안식일이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일곱 요일 중 어떤 날에 해당할까.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신 안식일이 일요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일곱째 날은 요일상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시간상 겨우 하루 차이지만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백성을 판가름하고 생명과 사망을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출애굽기 31:13~15).

안식일이 요일상 ‘토요일’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성경과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성경을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 (마가복음 16:9)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경버전인 개역한글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안식 후 첫날’ 즉 ‘안식일 이튿날(다음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구절을 공동번역에서는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뒤 ···”라고 번역하였다.

 

공동번역은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고 후에 도입된 요일제도를 적용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한 것이다. ‘안식일 다음 날’을 가리켜 일요일이라고 하였으니, 그 전날인 안식일은 당연히 토요일이 되는 것이다.

 

달력을 보아도 일곱째 날이 토요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요일순으로 이루어진 달력을 보면 첫째 날은 일요일이며, 일곱째 날은 토요일이다. 국어사전에도 일요일은 ‘칠요일의 첫째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토요일은 ‘일요일로부터 일곱째 날, 주말(週末)’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금성출판사, 국어사전 참고).

 

영어사전도 예외는 아니다. 영어사전은 ‘한 주 즉, 7일의 주기는 일요일을 시작으로 하여 토요일에 끝난다(Week: a 7-day cycle beginning on Sunday and ending on Saturday)’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 주의 시작은 일요일이고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은 토요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일요일은 일곱째 날이 아니라 ‘한 주의 첫날(sunday: the first day of the week)’, 토요일은 ‘한 주의 일곱째 날(Saturday: the seventh day of the week)’이라고 되어 있다(Merriam Webster’s Collegiate Dictionary 참고).

 

성경의 안식일이 토요일이라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가톨릭에서도 인정한다. 다음은 가톨릭출판사에서 발행한 ‘무엇하는 사람들인가?’라는 책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안식일(安息日)’은 쉬는 날이란 뜻인데, 하느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쉬었던 마지막 날, 즉 토요일입니다. 그래서 요즈음도 일력표에 보면 토요일이 주말로 되어 있습니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발행한 또 다른 책 ‘억만인의 신앙’에도 안식일이 토요일임을 밝히고 있다. “’안식’이라는 말은 ‘쉰다’는 뜻이요, 주일의 일곱째 날 곧 토요일에 해당하는 날이다. ··· 그렇지만 성서에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로 명시되어 있으니 성교회로가 아니라 성서에서부터 직접 종교를 끌어 왔다고 우기는 가톨릭이 아닌 이들도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정말 이치에 맞지 않는다.”

 

성경의 안식일은 일곱째 날로 요일상 토요일이다. 시대가 변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일은 바뀌지 않는다. 창조주의 기념일인 안식일은 창세 때부터 일곱째 날이었고, 구약시대에도, 2천 년 전에도 일곱째 날이었으며,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일곱째 날이다.

 
출처:패스티브닷컴

2013년 1월 23일 수요일

안식일 (하나님의 교회/안증회)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 선교협회(안상홍 증인회)는 하나님의 계명인 일곱 째날 안식일을 지켜 행합니다.

안식일은 단지 구약의 율법이 아닌 2000년전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지켜 행한 새 언약의 규례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의 계명 안식일, 안상홍님 하늘 어머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거룩하고 존귀한 안식일 지켜 행하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귀한 축복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의 계명인 동시에 그 날에 하나님을 기억하여 전심으로 예배하고 하나님께 축복을 간구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 축복받기를 바라고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지키라 명하신 날을 기억하여 예배를 드려야 함이 마땅하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예배일이 있다면 그 날을 지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올바로 믿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신앙의 자세라 하겠다.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마음대로 바꿀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지키라 명하신 예배일은 성경가운데 일곱 째 날로서 안식일이다.

창세기 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 째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 이더라.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을 특별하게 하셨다. 육일동안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 안식하시므로 창조주의 권능을 기념하는 날인 안식일로 삼으시고 이 날을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복주시겠다 약속하셨다.
그래서 모세에게 이 안식일을 십계명으로 성문화 시키신 것이다.

출애굽기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기억만 할 것이 아니라 거룩히 지키라 하셨다. 구약에서는 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육신적 죽임을 당할 정도로 강력히 안식일을 지키게끔 하셨다.
이처럼 안식일을 강하게 지키게 하심은 우리를 굴레 씌우시기 위함이 아니요 안식일이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31: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결국 안식일을 지키지 않음은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아무 관계가 없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 안식일을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단순히 구약의 율법이 아니다.


신약시대에도 계속해서 지켜져야 할 하나님의 계명이다.

누가복음 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예수님께서 이 땅가운데 오셔서 하신 모든 행위는 우리의 본이다. 예수님께서 안식일 지키는 본을 보여주심으로 안식일이 확실한 하나님의 계명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거룩히 지켜 행해야 할 안식일은 오늘 날 무슨 요일에 해당할까?

안식일은 분명 일곱째 날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지키고 있는 일요일예배가 안식일에 해당하는 것일까. 국어사전에서 살펴보면 일요일을 가리켜 한주간의 첫째날 이다라고 하고 한주간의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은 바로 토요일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성경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마가복음 16:9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안식 후 첫날이라는 것은 안식일 바로 다음 날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부분을 공동번역성서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마가복음 16:9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수께서 부활 하신 후

안식일 다음 날이 일요일 이라면 그 전 날인 안식일은 당연히 토요일임을 알 수 있다.
토요일이라는 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곱째 날이 토요일에 해당하기 때문에 안식일예배는 토요일에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임의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다른 규례를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마태복음 15: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나님의 계명이 아닌 사람이 정한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겠는가.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나님께 주여 주여 부르 짓고 믿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지만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있고 천국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의 계명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천국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계명이 무엇인지 올바로 판단하고 그 계명을 지켜 행함으로 천국에 나아가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일곱째 날 안식일을 지켜 행하여 그 날에 약속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라는 것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영원한 안식의 예표로 허락하신 창조주의 권능을 기억하고 축복 받는 안식일을 지켜 행하는 올바른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두번째 목자로 임하신 안상홍님 계신 하나님의교회


양은 목자의 음성을 좋아합니다.


겔34:12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전져낼찌라

 

겔37: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다윗의 예언을 따라 목자로 이땅에 등장하십니다.

 

그런데 목자의 순수한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나아 올것이요 그렇지 않은 자는 자기 목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목자가 음성을 발해도 목자에게 나아가지 않을것입니다.

 

초림때도 그러했고 재림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다윗의 예언을 따라 두번째 목자로 임하신 안상홍님 음성(새언약 유월절, 새언약 안식일)을 바로 듣고 나아 오는 구원받을 양 무리도 있지만 이시대에 그렇지 못한 자가 더 많이 있습니다.

 

안상홍님의 부르심이 들리는 사람들은 구원받을 양 무리겠지요.

 

흐리고 캄캄한 날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두번씩이나 이땅 가운데 임하신 안상홍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